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이유

 

예전에는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선 잠실부터 여의도까지 걸어다니며 사진을 잘도 찍곤 했는데, 요즘은 사진기가 어디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워낙에 전공일에 바쁘다보니 그런거라고 자위하곤 합니다만, 문득 이런 저런 연유로 사진전을 가곤 할때마다 ‘아.. 나도 사진을 찍곤 했었지..’ 라는 과거형의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또, 얼마전에는 목포에 갈일이 있어서 함박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던 날 국도를 따라 나주시를 지나쳐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그 산새가 너무나도 아름다운걸 알게 되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과 산속을 차를 타고 달리는데 정말 라디오에서 나오는 조용한 음악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 풍경들. 새벽인데다가 인적도 없는 국도인지라 30분 이상을 차 한대 보지 못하고 길을 달릴때의 느낌은 꼭 제가 생 떽쥐페리 처럼 야간우편비행사라도 된 듯한 기분입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도 사진기를 집어들 생각을 하질 못합니다. 그저 넋을 놓고 한숨과 함께 감탄하기에 바쁠뿐이지요. 그러고보니 얼마전에는 소록도에 들르면서 일부러 고흥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느라 길도 험한 좁다란 1차선길로 삥 돌아간적이 있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독한 기분에 차에서 내려 한참을 풍경을 감상했는데도 사진을 찍을 생각은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없는 감상까지 빨래를 짜내듯 짜내어가며 사진을 찍어 싸구려 감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느라 밤새도록 현상을 하고 스캔을 하고 포토샵으로 이짓저짓을 하곤 했었는데 왜 이젠 그 많은 벅찬 감정에 휘말리면서도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않게 되는 걸까요?

자동차의 콘솔박스에는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는 사진기가 사용기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흑백필름을 머금은채로 놓아져있는데도 불구하고 콘솔박스를 열어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사진기는 아직 그대로 있을까요?

사실 사진을 왜 찍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 많은 분들이,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대답이 ‘4월에 대한 영감을 논술하시오’라는 대학논술시험에 모든 수험생들이 ‘4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문구를 꼭 인용하듯, 고민과 사유없이 획일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교육받아온 그저 그런 사유의 한계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다는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가슴속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그 이유는 도대체 무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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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첨부한 사진.. 십오년 전 즈음에 찍었던 사진인데, 아마도 지금의 제가 그 자리에 다시 선다면, 왠지 ‘고놈 참 귀엽네..’ 하며 아이가 뭐하는지 우두커니 바라만보다 돌아올 것만 같습니다.

스트레이트 포토에 대한 열망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사진에 대해 열정이 불타오르기 전 난 미술을 먼저 배울 기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뚱딴지 같은 일이었지만, 불현듯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간 화실은 일반적인 입시화실이 아니라 어느 기성 화가분이 만들어놓은 개인 작업실이었다.  그저 죄송스러울 뿐이지만 버릇없이 찾아간 그곳에서 난 배움에 대한 댓가 하나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고선 그렇게 복터지게 가르침만 얻어온것 같다. 그림이야 뭐 이미 전부터 계속해온터라 별다른 준비과정은 필요없었다. 다만 나에겐 너무 좋았던건 밤을 세어가며 붓질을 해대던 그 화폭에 담겼던 리얼리즘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림들이 그 분을 만나서 구상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20호가 넘는 굵은 붓을 가지고 스윽스윽 그어대는 붓질들은 형태를 어느덧 파괴하고 있었고 나의 그림엔 조금씩 그림속 object가 사라지고 있았다.  나 역시 인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림을 한장 두장 그려나가는 동안 내 눈앞의 피사체는 그렇게 지상에서 종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추상은 결코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추상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내가 완전 추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반추상에만 머물고만 탓도 어느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상이 추상으로만 읽히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대개 우리의 사고체계가 구상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작품을 바라보면 이미지 속에서 이미지가 지시하는 텍스트를 찾아내려는 내재된 관성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도의 실패를 구상의 반대의 개념으로만 추상을 이해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자꾸 이미지를 보며 텍스트를 찾아내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시도 속에서 철학만 남고 장르적 특성은 소거되고 만다. 예술이 몸을 날것으로 드러내며 얻는 것이라 할 때 오늘날의 많은 예술적 작업들은 책상위 텍스트만 남고 본질이 소거되어버리곤 한다. 나는 예술의 본질이 몸뚱아리이지 정신이 아니라 생각한다. 거기에 텍스트의 바벨탑을 쌓는 것은 평론가들의 일이다. 추상 속에는 구상이 스며들어 있고, 반대로 구상속에도 이미 추상이 스며들어 있다.  나의 추상적인 관념을 화폭에 담기 위해 꼭 추상의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화폭을 뭉게 뭉게 피어나는 붉은 색감의 덩어리로만 묘사하거나, 우울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짙은 파랑으로 꿈틀대는 덩어리를 그린다던지 한다는건 어찌보면 아주 유아적이고 일차원적인 의식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식의 표현들은 국민학교 미술시간에도 수 없이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지금도 생각나는 대목인데 국민학교때 미술선생님이 클래식을 한곡 틀어주며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마치 구름처럼 화면을 채웠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부분의 추상이 이정도 수준인 것이다.  우리네의 특별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상을 뒤트는 일도 어느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구상의 차원에서 전개되지만 다소간의 추상적이며 다소간에는 초현실 적이리라. 하지만 난 그러한 표현법에 대해서 다소 거부감을 가지는 편이다.  물론 취향나름이긴 하겠지만 그 역시 1,2차원적인 영역에서 얼마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이다.  차라리 그러려면 숨긴다 라는 것이 내 주의인 것이다.  혁명적인 의식과 시각의 대전환을 보여주지 못하는 어설픈 자아의 발로로써의 작품들은 다들 의식과잉의 산물에 다름아니다.  세련되지 못한 방법을 통해 보여지는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작품은 어떻게 보면 천박한 것이다. 

어찌 되었건 사진을 보며 사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직관적인 충격과 정서적인 재반응보다 먼저 작가의 의식과 의도가 먼저 보여지는 사진들은, 대체로 작가가 도달하고자 한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인내심 부족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어설픈 습작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진은 대체적으로 성질급한 사람들의 장르라는 말에 난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표현에 대한 욕구는 강하고 그것을 제어할 통제력이 부족한 또는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퍽이나 매력적인 장르가 바로 사진인 것이다.  때문에 문득 문득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을 과도한 이성에의 집착, 지식에의 추종, 권위에의 동경등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과잉자아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난 스트레이트 포토를 좋아한다. 

평소 내가 표현하는 사진의 이미지는 모두가 다 나의 자화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때문에 난 그저 눈앞에 놓여있는 한 풍경을 담았을 뿐이지만 사실 내 사진은 추상이나 다름없다.  아도르노는 현대의 도구적 이성을 말하며 인간들의 욕구를 설명한바 있다. 그건 바로 타자의 객관화 물량화 수량화 도구화를 통해 스스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고, 다시 그 객체속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여 대량 복제 해내는 일련의 알고리즘을 이야기한다.  즉 그런식으로 대량복제된 얼터에고라고 할만한 객체들은 결국 주체자 자신의 무한 복제를 의미하며, 죽지않고 무한 번식하는 신적인 존재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실 아도르노의 이 논문은 이런 도구적 이성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왜 예술이 그러한 이성에 앞설수 밖에 없는지를 역설하며 마무리 지어지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투사와 복제의 알고리즘이 우리 내부에도 어느정도 있음은 인지할만 한 사실인 것이다. 

우리는 마치 우리의 친자식을 낳듯이 하나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우리의 내면을 담고, 또한 그 자체가 바로 내 자신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안에는 이미 내 자신이 들어있는 것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들어있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들어있는 것이다.  앞서 제목을 스트레이트 포토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결국에 와선 스트레이트냐 아니냐 하는 것은 단순히 보이는 것을 가지고 논하는 말장난에 지나지밖에 않게 된다.  사실 보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가 사진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진이 사진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고찰인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음은 결코 아름다운 피사체를 담기 위함도 아니며, 색이나 빛 을 담기 위함도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담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사진에서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진실이 아니라 사진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내 자신의 투사체이자 염사체 인 것이다. 

결론지으면 나의 스트레이트 포토에 대한 열망은 아주 간단하다. 

내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것. 나의 의식을 표면의 밑바닥에 숨기는 것. 그리하여 드러나지 않는 모든 순간에도 내 자신을 지속시키는 것.  인간의 관념마저 질량보존의 법칙에서 그다지 멀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어떠한 것이 자신의 창작행위를 하는데 있어 더 효율적인 것인가 하는것은 쉽게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의식을 날것으로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 하는것은 물론 취사선택의 문제이겠지만 길지않은 경험을 되돌아볼때 관념의 언덕하나를 넘지 못하고 풀어내는 자신의 자서전은 결국 그 언덕을 미끌려 내려오게 하지 않았나싶다.  결국 누구나 다 이르고 싶어하는 어느 경지 또는 지점에 대한 열망의 이야기인 셈이다. 

2017년 8월 22일

..

고요

길을 걷다가
문득 전화부스 속에서 한 여인이 흐느끼고 있는걸 보았다
누군가의 부음을 들은걸까
또는 사랑하는 이의 통보를 들은걸까
그도 아니면 어쩐 연유로 그리 슬피 우는걸까
저 상자속은 저러한데 이곳 바깥은 고요하기만하다
전화부스를 감싸고 있는 유리창은 세상을 고요함으로 덮고
사연을 알 수 없는 수 많은 이야기들은 거리를 부유한다
..
싸부님 말씀
역시나 사진과 작가노트가 따로 놀고 있다.
작가노트가 너무 많은 설명을 하려고 하고 있다.
좀더 간결하게 함축적으로 전달하라.
하고 싶은 말을 작가노트를 통해서 다 해버리면 안된다.
작가노트와 사진이 서로 시너지를 내야한다.

2017년 8월 15일

세계명작동화

어린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산속에 위치한 군부대는 나의 세계의 전부였다.
군인들과 군용물품 그리고 전쟁에 동원됨직한 여러 무기들이 즐비한 한복판에서 나의 동화같은 유년시절이 싹텄다.
왜 우리들이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은 다 잔인하고 참혹한걸까.
아이들을 모두 다 이끌고 산속으로 들어가버린 피리를 불던 어느 사나이의 이야기.
왕자를 사랑하던 결국은 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린 물속나라 어느 공주의 이야기.
영원의 상징인 불새를 손에 넣지만 자신의 목에 박힌 화살을 발견하는 어느 용감하던 이의 이야기.
하지만 왜 그 동화들은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걸까?
..
제목이 범상치 않다.
하지만 작가노트의 첫줄부터 비문이다.
글과 사진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 사진이 이 글과 어떠한 관련이 있냐고 질문
나는 사진의 내용이 아니라 정서와 관련이 있다고 대답
작가노트는 작품의 제목을 보고 받은 느낌과 사진을 보고 받은 느낌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일종의 열쇠라고 설명하심
제목과 작가노트와 사진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한다고 하심

통의동 백송

통의동, 서울 2017

통의동 백송은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 수형이 아름다웠다고 하나 1990년 불어닥친 태풍으로 넘어진 뒤 지금은 밑둥만 남아있다. 이를 기리는 지역주민들이 이 백송터에 어린 백송을 가져다 놓아 오늘에 이르었다.

사적 279호, 구 중앙시험소

동숭동, 서울 2017

대학로에 있는 방송통신대학교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조선총독부의 중앙시험소. 1981년 사적 제289호로 지정되었고 1906년 대한제국 때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지 시대 유일한 공업연구기관으로 염직, 직조, 제지, 금은세공, 목공 등의 근대기술을 교육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근대 목조 건축물이라고한다.

새벽 3시

서촌, 서울 2017

새벽 3시에 동네 지인을 만나 콩국수를 한 그릇 먹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후덥지근한 열대야에 조심히 발걸음을 딛는데도 이내 땀이 흐른다. 밤에 보는 서촌은 낮과 그리 다르지 않다. 늘 거기에 서 있는 건물들. 골목들. 그리고 밤길을 달리는 차들과 사람들.